선사시대 맥주와 오늘날의 맥주
link  맥주맨   2025-10-10


기원전 6000년부터 도기가 실생활에 널리 쓰이면서 발효 음료를 운반할 목적으로 용기들이 제작되었다. 다양한 곡물로 만든 맥주는 중앙아시아, 중동과 근동,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신석기시대와 고대 내내 가장 보편적인 음료로서 꿀과 허브, 약용 식물을 첨가해 마시기도 했다. 수메르인들은 사회 모든 계층이 야생 보리로 빚은 술을 다량 소비했다.

맥주는 이집트인들의 식단에서는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식단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자연 발효시켜서 여과하지 않은 술은 빵 못지않게 영양가가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집트인과 수메르인은 맥주을 ‘액체로 된 빵’으로 여겼다.

피라미드 건설에 동원된 노동자들도 매일 빵 한두 덩이와 4-5리터의 맥주로 보수를 받았다. 매일 마시는 술의 양으로는 너무 많다 싶지만 힘든 육체노동에는 그정도 칼로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맥주는 파라오부터 서민까지 모든 계층에서 가장 흔히 마시는 음료였다.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지금도 물보다 맥주가 건강에 이로운 음료라고 생각할뿐더러 그 자체가 일종의 양식이라고 생각해서 하루에 필요한 칼로리의 절반을 맥주로 채운다.

수단과 검은 아프리카에서 멀지 않은 이집트 상부 지역에는 대단히 오래된 양조장들이 있다. 히에라콘폴리스에는 기원전 3400-3500년부터 있었다는 맥주 양조장이 있는데, 맥아화와 맥아즙 숙성에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통과 가열 기구를 볼 수 있다.

물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하면서 재료를 오래 담가서 맛을 빼낸다. 패트릭 맥거번은 당시에 이런 시설에서 하루에 맥주를 1,000리터 이상 공급했을 것으로 보았다. 맥주 양조장은 빵 만드는 화덕과 함께 있었다. 그러니까 기원전 4000년 당시에 이미 곡물을 수확, 저장하고 빵과 맥주로 만드는 집단적인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기원전 31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아비도스 유적지의 비슷한 시설에서도 벽돌 난로 위에 올려놓은 500리터들이 큰 단지들을 볼 수 있다. 가장 놀라운 점은 부르키나파소에서 이 같은 선사시대 양조장 시설을 이용하여 지금도 맥주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19세기 이집트 학자들은 이러한 맥주 발효법을 지툼, 혹은 지토스라고 불렀다. 이 맥주는 오늘날 맥주와 비교할 수 있는 켈트족 특유의 맥주와 상당히 달랐다. 발아되고 맥아화된 곡물의 발효죽 같은 상태라고 할까. 고대 이집트에서는 밀과 보리를 가루로 만들고 물과 섞어 빵 반죽을 만들었다.

여기에 (전날 굽지 않고 남긴 반죽을 섞는 방법으로) 누룩을 심고 발효시킨 후 저온에서 표면만 익혔기때문에 빵 안의 누룩과 효소가 완전히 파괴되지 않고 촉촉했다. 이 빵을 부스려뜨려서 물에 타면 걸쭉한 죽처럼 된다. 액체를 걸러서 따뜻하게 데워놓은 단지로 옮긴다. 단지 안에서 액체가 발효되기 시작하는데 때로는 대추야자나 포도알, 전날 만든 맥주를 첨가해서 일부러 발효균을 심기도 한다.

카이로, 수단, 모로코 시장에서 팔리는 수제 맥주 ‘부자’는 지금도 이런 식으로 만든다. 19세기 여행자들도 이 맥주에 관한 묘사를 남긴 바 있다. 연한 노란색의 뻑뻑한 이 음료는 누룩 냄새가 많이 나고 알코올 성분이 생기기 전에 젖산 발효를 하기 때문에 시큼한 맛이 난다.

알코올 도수는 발효 기간과 여과 여부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3-5도로 그리 높지 않다. 이 맥주는 5,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수많은 버젼을 자랑하는 인기 높은 음료다. 탐험가 브루스의 기록에도 아프리카 여러 지역, 에티오피아, 수단, 서아프리카, 남아프리카에서 이 맥주를 만든다고 나와 있다.







날것도 아니고 익힌 것도 아닌
마리클레르 프레데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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